(산상 설교 5)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 5:7) (2024)

성경 본문: 마 5:7

설교 제목: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1. 존재와 행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팔복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 제자들이 누리는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팔복의 말씀을 따르고 복을 받아야 합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행동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네 가지 복에서 말씀하셨던,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나머지 네 가지 복에서 말씀하시는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보다 행동하고 결과물을 성취해 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내면보다 그 사람의 외모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어떤 행동을 하느냐 보다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서 네 가지 존재를 먼저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존재가 된 후에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결과물을 성취해 내기에 앞서 먼저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에만 집중하고 행동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행동이 존재를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할 때 더 강력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팔복에서 뒤에 네 가지 행동을 할 때, 앞에 네 가지 존재는 더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2. 긍휼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1) 어떤 남자와 아이들

어떤 남자가 두 명의 남자 어린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아이들은 장난치고 떠들면서 열차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아빠는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멍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급기야 어떤 사람이 아이들의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떠들어서 승객들이 불편해하고 있으니 아이들을 통제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아빠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아이들의 엄마 장례식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제가 경황이 없었습니다.”

2) 긍휼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긴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긍휼(엘레오스)은 먼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긍휼은 상대방을 공감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곤경에서 벗어나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긍휼은 상대방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감정적으로 연민의 강정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긍휼히 여기는 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도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그 사람을 두들겨 패고 모든 것들을 빼앗고 옷까지 벗겨서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어떤 제사장이 그를 보고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어떤 레위인도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아마도 버려진 사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버려진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쓰러진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상처를 포도주로 씻어내고 기름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자기의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살피면서 그날 하루를 주막에서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떠나면서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두 개를 주면서 그 사람을 돌봐달라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끝났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불쌍히 여겼고 실제적인 긍휼(자비)를 베풀었습니다.

3) 어떻게 긍휼히 여길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 어떻게 긍휼을 베풀어야 할까요?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는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인색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해서 하는 것은,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벌금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는 ‘내 것’으로 해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려면 내 식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선품’이라는 말에는 ‘정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자선품은 정의롭고 정당하게 얻은 것이어야 합니다.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적인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을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해야 하듯이 긍휼도 주님 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는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선을 베풀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받는 자도 감사하지만 주는 자는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받는 자 복되지만, 주는 자가 더 복이 있습니다. 줄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3.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천사들은 날개가 달려있는데 그 날개 아래에는 손이 있다고 합니다(겔 1:8).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음의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증거할 수 있는 손, 선한 행동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선한 행동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선한 행동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했던 야고보 사도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니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약 2:13).

긍휼히 여겨야 할 때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면 긍휼이 없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무거운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25장에는 나발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나발은 심하게 부자였습니다. 양이 삼천 마리, 염소는 천 마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양털을 깎을 때가 되었습니다. 양을 키우는 사람이 양털을 깎는다는 것은 곡식을 추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발은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렸습니다. 다윗은 부하 직원 열 명을 나발에게 보냈고 나발에게 다윗의 말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다윗이 나발에게 하는 말은 대략 이렇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집과 당신의 모든 소유가 평안하기를 빕니다. 당신의 목자들이 광야에서 우리와 함께 보낼 때, 우리는 당신의 목자들과 당신의 양과 소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부하들이 당신의 은혜를 얻게 하십시오. 우리가 좋은 날에, 큰 잔칫날에 방문하였으니 당신의 손에 있는 대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나발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삼상 25:10-11).

이 말은 한마디로 한다면, “주인을 배반하고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개뼈다귀 같은 자에게 음식을 줄 수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발은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을 조금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심하게 모욕을 했습니다.

나발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나발은 밤이 새도록 먹고 취했고 다음 날 몸이 돌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열흘쯤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4. 신자를 향한 설교자의 긍휼

아모스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아모스 8:11-13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선한 목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양들은 하나님 말씀에 가장 굶주리고 목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좋은 말씀을 찾아서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습니다. 기독교 관련 방송 설교와 유튜브에서는 설교가 넘쳐나고 있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이 진실로 좋은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설교자들도 무엇이 좋은 하나님의 말씀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설교자들도 잘 모르는데 평신도들을 잘 알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서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삯꾼 목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삯꾼 목자는 양들의 처지를 외면합니다. 그들은 양들을 영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털과 고기를 찾습니다. 삯꾼 목자는 양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말을 전합니다.

영혼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진리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삯꾼 목자는 영혼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삯꾼 목자는 영혼의 건강보다 헌금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달콤하고 기름기가 많은 자기의 말을 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실 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마틴 루터는 사역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주제를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죄와 용서, 거룩함, 믿음으로 사는 삶 등에 관해서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삯꾼 목자들은 생명의 떡이시며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양심과 골수를 찌르고 쪼개는 말씀을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양심과 골수를 찌르고 쪼개는 말씀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양심은 이미 하나님을 향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삯꾼 목자는 쉬운 설교 이미 다 아는 수준의 설교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연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너무 알기 쉬운 것만을 말한다면 기분 나빠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자를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삯꾼 목자는 감정을 자극해서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려고 합니다. 감동을 주는 것이 곧 은혜를 끼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그 연구한 말씀을 전달해야 합니다. 청중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중이 구도자의 심정으로 말씀을 대하지 않는다면 구도자의 심정으로 연구한 설교자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설교자는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설교자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전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영혼을 긍휼이 여기지 않는다면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먼저 받아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설교자에게 말씀을 풍성하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생략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다시 말씀할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가 긍휼이 여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복은 최고의 복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은 보너스로 주어지는 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긍휼히 여기시는지 관련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긍휼히 여기는 자는 재앙의 날에 구원을 받습니다. 시편 41:1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② 긍휼히 여기는 자는 의인이라 인정을 받습니다. 시편 112:5, 6 말씀입니다.

“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③ 긍휼히 여기는 자는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잠언 11:25 말씀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④ 긍휼히 여기는 자는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시편 37:26 말씀입니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⑤ 긍휼히 여기는 자는 직장과 사업장에서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15:10 말씀입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⑥ 긍휼히 여기는 자는 천국에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2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장차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긍휼이 여겼던 일들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가 했던 일들을 보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긍휼히 여기기

사실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해서 긍휼히 여길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긍휼을 베풀기 쉬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무자비한 존재, 긍휼하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긍휼 가운데 최고 최상의 긍휼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우리의 긍휼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모든 긍휼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긍휼히 필요합니다. 긍휼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긍휼이 필요하신 분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의 긍휼이 필요하실까요? 사람은 하나님을 긍휼히 여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같지만, 하나님도 우리 인간의 긍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긍휼은 공감과 행동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공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도 인류와 피조 세계와 함께 고난받으시는 주님을 긍휼히 여길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긍휼히 여기실 것으로 믿습니다. 아멘.

(산상 설교 5)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 5: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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